*화평케 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9) 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어딜가나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만하거나 불필요한 말로 이간질해서 성도들을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고, 화평치 못한 관계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23-24절에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욥기22:21절에“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내게 임 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화목하면 사람과도 화목해 질수 있습니다.
마태복음6:12절에 기록된 주기도문 내용중에 우리가 우리에게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우리에게 사람과 사람사이에 용서하고 화목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남미 칠례와 아르헨티나 국경사이에 예수님의 대형 동상이 있습니다.
오래 전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경계선 문제로 장기간 분쟁을 계속했습니다.
이 같은 분쟁은 급기야 무서운 유혈 사태로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1900년 부활절 아침 아르헨티나의 한 사제가 그리스도의 부활및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형제의 우정을 맺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론 했습니다.
그는 이 같은 강론을 아르헨티나 각지에서 했을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칠레까지 가서 전 했습니다.
그의 이 같은 노력으로 두 나라는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무기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군함은 상선으로 개조되었으며 무기를 만들던 공장은 공업 학교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두 국민 사이에는 신뢰가 생겼고 그리하여 대포를 녹여서 그리스도상을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드디어 1904년 3월 13일 동상의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전에는 적이었으나 이제 두 나라 백성들은 동포에게 느끼는 사랑을 서로 서로 교감하였습니다.
동상이 제막되고 태양이 질 무렵 두 국민은 무릎을 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동상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구주 예수의 발 밑에서 끝까지 유지하기로 서약한 평화를 만약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깬다면 즉시 이 상들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라."
사실 이 동상이 완공되기까지 숨겨진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착공되던 당시에 동상의 방향을 두고 한바탕 소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지형과 여러 가지 조건들을 따지다보니 동상이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 쪽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칠레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왔습니다. 칠레 내부에서는 동상건립 반대 운동이 일어나 뒤숭숭해졌습니다.
“왜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 저들에게만 예수님의 축복이 임하라는 거야?”
칠레 사람들의 원성이 커지자 양국 간 화해의 분위기에도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칫 유혈사태로 발전 될 즈음한 한 기자의 기사 한 줄이 유혈사태까지 갈 뻔한 일을 무사히 넘기고 급선회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칠례보다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접한 칠레 사람들은 상처진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료하여 빠른 회복으로 더 이상 예수님 상의 방향을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새롭지만 전혀 어렵지 않은 해법을 제시한 기자의 재치로 양국은 계속 평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담의 후애로 오류를 범하고 삶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생각이 짧아 실수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의 생각에서 오는 생각과 관점에따라 환경에 따라 그 파장효과는 실제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화평케 만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칠례의 한 기자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밤 잠을 설쳐가며 정녕,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있다면 무었인가, 다시금 과거의 역사로 되돌아 가는 것인가,등등,, 이 일에 어떻게 하면 내가 어떤 좋을 글을 써 서로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 수 많은 고민 끝에 이 한 줄의 재치있는 기사를 만들어 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된 우리는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할까요, 주님 안에서 주님의 고귀한 핏값으로 나눈 형제 자매인 우리는,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재치를 발휘해야 합니다. 골육보다 더 많은 사랑으로 이해하고 베풀어야합니다. 관대해야 합니다. 너그러워야합니다. 용서해야합니다.
비록, 좋지 않는 말을 들었거나 할지라도, 그 말을 좋은 의도와 생각으로, 그 내용을 변환하여 듣거나 말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분위기를 평화롭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 집니다.
그렇게도 나, 나, 나, 나의 한계에 멈춰 서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중적인 사람은 결코 신앙인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세상속에서도 그 사람의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 속에 들어있는 죄와 마귀의 습성은 미워 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도 이와 같다면 우리 신앙인이라면 더 말할 나위없이 당연히 안타까이 여기고 성령의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할때, 우리의 교회가 밝아지고, 가정이 밝아지고, 이웃이 밝아지고, 사회가 밝아지는 따뜻하고 포근한 사랑의 꽃이 피게 될 것입니다.
비록 저주의 말을 들었다 할 지라도, 들은 그 말을 나를 위한 좋은 말로 변환하여 듣는다면, 오히려 들었던 그 말이 축복의 말로 변환되어 실제로 축복이 임 할뿐만 아니라,
일생동안 우리의 삶은 복 된 삶과 동시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화평케 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주시는 참 된 평안과 평강이 임하시길 기도합니다!